시드니라이프

[시드니일상] 이직 결정, 나는 어디로?

Carpediemseo 2018. 10. 1. 21:31


저녁에는 조금 쌀쌀하지만 낮에는 반팔입고 다닐 정도로 따뜻해진 시드니. 근로자의 날, 혹은 노동절 (Labour day) 이라 New South Wales에 속하는 시드니는 오늘 공휴일이었다. (호주는 각 주마다 공휴일이 조금씩 다르다.자세한 공휴일은 이곳을 참조)

별다른 계획없이 노동절을 시드니에서 보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 오랜만에 시티에 있는 보타닉 가든에 다녀왔다. 보타닉 가든은 크기가 크다보니 구역이 두군데로 나뉘어져 있는데, 시티 가까이 있는 곳은 뉴욕의 센트럴파크를 약간 생각나게 하기도 하고, 서큘러키 쪽으로 더 가면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릿지를 동시에 볼 수 있어서 내가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이다. 원래는 공원에서 좀 쉬다가 근처에 있는 주립도서관에 가서 공부 계획도 짜고 인생계획(?)도 짜고 그럴려고 했는데 공휴일이라 5시에 문닫는다고 해서 3시쯤에 도착한 난 그냥 공원에서 쉬기로ㅋ. 

새로운 회사의 계약서에 사인한 건 거의 한달 반 전쯤이긴 하지만 이직할 회사가 정해졌다. (지금 회사의 3개월 노티스기간 때문에 이러고도 새회사에 입사하기까지 두달은 더 기다려야 한다;;) 

약 일년정도 다니고 한달 반 뒤에 그만두게 될 지금의 회사. 많이 배우고 성장했지만 첫 입사날부터 스트레스를 굉장히 많이 받으며 일한 회사이기도 했다. 이전 회사들처럼 같은 롤로 같은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일의 심적부담과 나의 한계를 많이 느끼게 하고 내가 지금 일하는 업무, 나의 롤에 대해 회의감을 많이 느끼게 한 회사여서 입사 후 6개월 뒤부터 이직을 결심하게 된 것 같다. 이전 상사와의 갈등도 이직을 결심하는 데 한몫하긴 했지만. 

게다가 호주의 비자법이 많이 바뀌면서 영주권 신청이 불투명해진 불안정한 신분과 아무리 있어도 재미있어지지 않는 시드니생활에 염증을 느끼며 언제나 나를 반겨주는 싱가폴로 다시 돌아갈 지, 디지털마케팅 쪽에 기회가 많은 베를린으로 갈 지, 그렇게 호주를 떠날 궁리를 하기 시작했다. 

4월말부터 본격적으로 베를린, 싱가폴 쪽에 잡을 알아보기 시작했고 결국 5월달에는 베를린에 여행을 가보기도 했다. 나중에 해외취업팁에서 자세히 다루겠지만 베를린이란 도시와 인터뷰를 봤던 포지션들이 나와는 맞지 않음을 깨달았고, 결과적으로 난 시드니에 남게되었다. 생각지 못한 기회로, 내가 생각해 오던 포지션으로, 게다가 우리 부모님도 아시는 그런 이름 있는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그렇게 새로운 회사에서 정식 오퍼를 한달반 전에 받고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 사표를 냈다. 퇴사를 말하면서 알게된 사실인데 나는 스폰서 비자에 묶여있어서 노티스 기간 (퇴사 통보 후에 다녀야 하는 기간. 보통 계약서에 명시되어 있다.) 이 12주인데 호주 시민권자나 영주권자들은 노티스 기간이 보통 4주에서 6주란다. 가뜩이나 정이 떨어질대로 떨어진 회사인데 더 정떨어지게 만드는 회사다...진짜...

이전 상사를 제외하면 팀 멤버들이나 같이 일하는 동료들은 다 좋다. 열심히 일하고, 배울 점도 많고. 근데 회사는 애사심은 커녕, 퇴사심을 부르는 불리한 조건들이 많음을 느꼈다. 특히 외국인과 경력없는 Entry Level에게는 불리한 점이 많은 것 같다. 뭐 내가 계약서를 꼼꼼이 살펴보거나 연봉협상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도 있겠지만, 솔직히 말하면 싱가폴에서는 결코 생각해보지 않았던 향후 2-3년 뒤의 커리어와 연봉에 한계가 여기 호주회사에선 보였다. 

뭐 열심히 하면 그 한계를 극복 못할 건 아닌데 그걸 극복해 보겠다고 별로 개고생하고 싶지도 않다. 난 내가 잘하는 걸 더 잘하기로 이직 준비할 때 이미 결심했기 때문에 내가 잘 못하는 것에 대해 크게 스트레스 받아가며 잘하고 싶지도 않다. 아마 지금의 회사에서 약간 번아웃된 것도 있는 듯. 모든 건 다 회사탓ㅋ  

다행히 새로 옮기게 될 회사는 글로벌 포지션이라 그럴 일은 크게는 없을 것 같고 (뭐 여기도 미국계회사라 시니어 포지션으로 가는 건 역시 보이지 않는 벽이 있겠지만) 그냥 나만 잘하면 될 것 같다.

그렇게 난 시드니에 남기로 했다.